국민투표는 프레임에 관한 이야기

MB, 우리 평화적으로 맞짱 한번 떠보자. 에대해 트랙백한 자충수에서 다시 트랙백.

글 써놓고 잊고 있었는데, 며칠만에 들어와보니 덧글도 많고 트랙백도 많군요.

사실 원문의 주제는 국민투표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국민투표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짜보자는 것입니다. 이는 만화가 김태 님의 포스트인 이명박의 백일천하(1) : 프레임 전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죠. 광우병 사태에 대한 프레임은 그동안 여러차례 변경되었습니다. 사태 초기 정부는 '과학과 괴담'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했습니다. 이야기를 광우병이 과연 그만큼 위험한 병인가에 관한 것으로 국한시켰죠. 과학과 통계의 차원에서 광우병이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는 정부의 주장은 옳습니다. 물론 그 과학과 통계가 정부에 가까운 쪽에서 나오거나 유리한 것만 편집한 것이므로 사실 순환논증에 가깝긴 하지만요. 어쨌든 이 프레임은 100분토론과 국회 청문회에서 반대측을 확실하게 무력화시켰습니다.

백분토론에서 이상길이 이 프레임을 무기로 반대측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내는 도중, 프레임이 극적으로 바뀝니다. 미국의 이선영 주부, 진중권 교수, 송기호 변호사 이 세사람이 광우병 자체의 위험성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위험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을 막아내는 것이 국가의 의무가 아니냐는 쪽으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주권'이라는 프레임이 도입되면서 '과학과 괴담'이라는 프레임을 전제로 한 정부측의 방어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반대로 촛불 문화제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정부는 여기에 '합법-불법'의 프레임을 사용했지만 소위 여대생 군화발 사건이 발생하면서 '폭력과 비폭력'의 프레임에 묻혀버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폭력에 대항해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폭력과 비폭력' 프레임은 굉장히 불안정한 구도입니다. 정부의 폭력은 공권력과 법집행이라는 차원에서 얼마든지 자기합리화가 가능한 반면, 시위대의 비폭력은 한두명만 흥분해도 언제든지 깨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시위대의 비폭력은 깨졌고, 그 직후 촛불 문화제의 증가세는 둔화되었습니다.

다행히 종교계에서 나서서 전경과의 충돌을 회피함으로써 폭력 비폭력의 프레임은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실효성은 사라졌습니다. 충돌이 없기 때문에 폭력-비폭력 자체가 중요하지 않게 된거죠. MB가 완전히 미쳐서 종교계가 이끌고 남대문으로 가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해산시키지 않는 한 폭력-비폭력 프레임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대신 MB는 지금 다시 '합법과 불법'이라는 프레임으로 사태를 몰아가고 있지요. 물론 이 프레임 역시 정부측에 유리한 구도입니다. 집시법의 위헌성과 별개로 촛불문화제는 집시법상 위법이 맞습니다.

제가 제안한 국민투표는 이미 무너진 '폭력-비폭력' 대신 '합법-불법'의 프레임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입니다. 이야기의 논의를 누가 국민의 뜻인가로 몰아가자는 것이죠. 국민투표가 악용될 수 있고,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은 이미 알고 있던 사안이었고 이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 프레임은 실제로 MB가 국민투표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시위 현장에서 외치는 '정권 퇴진'과 같은 차원의 구호죠.국민투표 제안이 실제로 노리는 것은 대통령을 침몰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끌어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투표의 위헌성에 대해서는 사실 논의하기가 힘듭니다. 쇠고기 고시안이 국민투표를 해야 할 만큼 국가 안위에 중대한 사안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아마도 위헌성의 척도가 될 테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논의된 바가 없습니다. 일단 말씀하신 바와 같이 대통령의 재신임 여부를 묻는 플래비지트는 위헌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결국 고시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위헌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곳은 헌재인데, 국민투표 부의 자체는 헌법이 직접 명하고 있으므로 위헌법률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고, 법률로 걸고 넘어지려면 국민투표법인데 이 법 자체엔 위헌성이 없습니다. 따라서 위헌법률심판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탄핵심판과 정당해산심판은 아예 처음부터 논외지요. 결국 국가기관의 권한 행사로 보아 헌법소원으로 가거나 권한쟁의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헌법소원에 들어가려면 일단 개인에 대해 현재적이고 구체적인 기본권 침해가 있어야 하는데, 국민투표가 어떤 기본권 침해를 야기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헌법소원도 힘들고, 권한쟁의로 가려면 다른 국가기관과의 충돌이 필요한데 그마저도 힘들지요. 헌재에서 기각되지도 못하고 사전심사 단계에서 각하될겁니다. MB가 미쳐서 국민투표에 올린다고 해도 제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실은 국민투표 부의가 위헌이라는 사유로 탄핵할 경우엔 헌재에서 위헌 심사가 가능하긴 합니다.)

또한, 중요 사안에 대한 국민 의견을 묻는 래퍼랜덤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요. 설령 MB가 국민투표에 부의해서 진다고 해도 MB는 승복할 의무가 없습니다. 국민 절반이 빨갱이에게 세뇌당했다고 외쳐도 무방합니다. 특정 정당을 두둔하는 발언을 한 것은 탄핵 사유가 되지만 래퍼랜덤 결과를 무시하는 것은 실정법 위반이 아니기 때문에 탄핵 사유도 되지 않지요. 말씀하신 바와 같이 대통령에게 유리하면 유리했지 절대 불리하지 않은 제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고시안에 대한 국민투표는 MB에게 승산이 적으며 MB는 위험부담을 떠안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투표 제안이 위험한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프레임의 짜기 위한 단서를 포기할만큼 위험한 상황인지는 동의하기 힘들군요. 그에 대해서는 원문을 쓰신 분과 제 견해가 아마도 좁혀지기 힘드리라 생각되므로 그 이상의 논의는 무의미하다고 생각됩니다.

만일 제가 애초에 의도했던 프레임 문제 외에 국민투표제도와 관련한 논의가 이어진다면, 어떻게 하면 정권에 악용되는 부작용 없이 국민투표제도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헌법 조항의 변경이라든지 뭐 기타등등 말이죠.

by 고금아 | 2008/07/05 23:16 | 정치(임시)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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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깊고푸른 at 2008/07/06 01:07
아..국민투표..뜨거운 감자일 수 밖에..
어렵군요..
Commented at 2008/07/1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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