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거의 욕설 사건을 냉소하는 이유

0. 서론

기사 본 건 낮이었지만 근무중이었던 관계로 지금에서야 글을 씁니다.

사람은 가장 감성적인 주제에 이성적인 척 하는 동물이라죠. 어쩌면 다른 분들 말씀대로 그냥 벵거가 싫으니 이전에 선수단 휘어잡으랄 때 까맣게 잊고 까는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벵거의 충격요법을 냉소할만한 합리적인 이유를 두가지 대겠습니다. 이것이 이성에서 온 것인지 감성에서 온 것인지는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1. 욕먹고 정신차린다고 될 스쿼드인가?

여러번 재사용 가능한 손난로 아시죠? 이 손난로는 과포화용액의 결정화 반응을 이용한 것입니다. 따뜻한 물에 아세트산 나트륨을 많이 녹여내고 천천히 식히면 원래 녹을 수 있는 양보다 많이 녹아있는 상태가 되죠. 여기에 똑딱이로 충격을 가하면 급속하게 원래 상태로 돌아가면서 열을 발산합니다. 반대로 뜨거운 물로 가열하면 아세트산 나트륨이 녹으면서 원래의 과포화용액 상태로 돌아오죠. 만일 액체의 농도가 낮다면 똑딱이를 백번 쪼물락 거려봤자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충격 요법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할 수 있는 것보다 못할 때에나 충격을 줬을 때 반응이 튀어나오는 법이죠. 애초에 딱 그정도 밖에 안되는 애들 상대로 충격 줘봤자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아스날에 필요한 건 똑딱이가 아니라 충분한 농도입니다. 농도는 계속 옅어지는데 이제서야 똑딱이 만져봤자 죽은 자식 고환 만지기죠.


2. 욕을 한다고 겁을 먹겠는가?

EPL에서 충격 요법 하면 가장 유명한게 퍼거슨이죠. 이 아저씨의 헤어 드라이어 처방이 먹혀 들어가는 건 이게 정말 말 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못하면 벤치로 쫓겨나거나 리저브로 가는 건 다반사요,  스탐처럼 절정기에 다른 팀으로 날아가기도 합니다. 단순히 욕을 잘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욕 뒤에 실제 행동이 존재하기 때문에 헤어 드라이어가 먹히는 거지요.

그렇다면 우리 상황을 봅시다. 냉정하게 밀란전 스쿼드가 우리의 가용한 베스트였고 우리는 살얼음판 위에서 4위 싸움을 하고 있지요. 어느 누구를 내린다고 쳐도 올릴 선수가 없습니다. 송 빼고 코퀄린 넣을까요? 사냐 빼고 예나리스나 코퀄린 넣을까요? 주루 빼고 미켈 넣을까요?

예전에 전력 보강이 아닌, 팀 기강 차원에서 벵거의 무영입 정책을 비판한 적 있지요. 어차피 자기보다 잘하는 선수 데려오지 않을 것을 알고, 팀 내에 자기 말고는 한참 아래의 리저브 꼬꼬마 뿐인데 선수들이 무슨 자극을 받고 무슨 발전을 이루겠냐구요. 정말 비교하긴 싫지만 맨유를 보면 기본적으로 적당히 잘하는 애들이 포지션을 경쟁하고 있습니다. 당장 찍히면 다음 경기는 선발로 못나오고 시즌 뒤엔 쫓겨날 수도 있어요. 거기다가 얘들이 서로 스타일도 달라서 필요에 따라 꺼내쓸 수 있지요. 못해도 계속 나오는 놈과 그 놈 조차 못 제끼는 놈이 있는 아스날과는 다릅니다.

 하이버리에서 그렇게 까이는 주루, 얼마전에 재계약해서 주급 올려줬죠. 예 그따위로 해도 그렇잖아도 넉넉한 주급 얹어주기까지 하는 구단이니 이 사단이 난겁니다. 이적시장도 끝났겠다, 벵거가 미친척하고 이번 시즌 포기하고 리저브 올릴 것도 아닌데 그깟 욕 몇마디 들어봤자 무슨 자극을 받겠습니까. 그냥 기분만 더러울 뿐이겠죠. 차라리 주급이라도 깎았다면 모를까요.


3. 결론

슈팅을 백날 차면 뭘합니까. 골대 안으로 향해야 골이 들어가지요. 제가 봤을 때 벵거의 욕설 사건이 딱 저겁니다. 골대 근처에도 못가는 뻥슛이죠. 물병던지기의 연장에 있는 개인 감정의 배설. 그 이상도 이하라고 봐요. 정말로 충격을 주고 싶었다면 차가운 한마디면 됩니다. 다음 시즌 대폭적인 물갈이를 예정하고 있으며 지금부터 살생부를 작성하겠다구요. 이왕 남은 경기 계속 내보낼 수 밖에 없다면 앞으로 한경기 한경기를 다음 시즌 이 팀에 있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하는 테스트로 사용하겠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해야 애들이 충격을 받지요. 뭐 하기사 물갈이를 못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안먹혔을지도 모르겠네요.

by 고금아 | 2012/02/17 23:12 | 칼럼 및 기타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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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미스터 L at 2012/02/18 13:14
벵거 감독의 아스날은 항상 그랬죠. 1군 선수들(+교체멤버 3~4명)을 딱 정해놓고 그 안에서만 스쿼드를 굴리는 용병술. 아르샤빈도 그거에 관해서 인터뷰도 했었고..

좀 알기 힘든 감독이죠. 선수 영입정책을 보면 굉장히 현실적인 감독인데, 선수 굴리는 걸 보면 이상주의자의 극을 보여주는 것 같으니까요.
Commented by 고금아 at 2012/02/19 02:07
효율의 함정이죠. 완전매진이 얼핏 보기엔 창고 물류비용도 없고 깔끔하니 좋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팔 수 있는데 못팔아서 손해인 것과 마찬가지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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