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에 우승을 노릴 자격따윈 없다.

일단 다 잡은 경기를 놓치면서 - 그리고 실낱같던 우승 기회를 제손으로 버린 것에 대해 완전히 열이 받아있는 상태이긴 합니다만, 오늘 경기가 아스날의 문제를 제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 글을 씁니다.

요 몇년간 아스날의 전력 보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돌려막기'가 되겠습니다. 매 시즌 퍼즐의 한조각이 부족해 우승을 놓치고 다음 시즌에 한조각'만' 보충합니다. 좋습니다. 한조각 부족한데 두세조각 사는 것이 낭비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아스날의 문제는 항상 한조각 가져오는 동시에 다른데서 한조각 버린다는 거죠. 그러니 잘해봐야 +- 쌤쌤인데, 가져올 조각에 돈 쓰기 싫어서 되다 만 조각을 가져오니 결국 전력은 - 입니다.

투레를 팔고 베르마엘렌을 데려온 것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물론 지난 시즌 투레와 이번 시즌 베르마엘렌을 비교해보면 이번 시즌 베르마엘렌이 낫긴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선수층이 " <- 요만큼도 두터워지지 못했고 시즌 내내 베-갈 혹사당하다가 말미엔 둘 다 드러누웠죠. 주루는 일찌감치 드러누웠고, 센데로스는 완전히 눈 밖에 난 상태에서 뭘 믿고 베르마엘렌으로 퉁쳐버린 거죠? 설마하니 실베스트레의 성장을 기대한겁니까?

또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미드필드진의 개편입니다. 07/08 시즌 두두의 부상 이전까지, 아스날 돌풍의 핵은 누가 뭐래도 플라미니였습니다. 플라미니가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공/수 양면에서 활약해주면서 세스크에 걸리는 부하가 줄었고, 로시츠키-세스크-플라미니-흘렙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미드필드로 경기를 장악했죠. 08/09 시즌의 과제는 이 플라미니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였습니다. 그에 대한 벵거의 대책은 '업ㅋ엉ㅋ' 이었죠. 데닐손 / 쏭 / 디아비 세우는 족족 실패했습니다. 쏭을 세우니 실바 못지 않게 공격이 안풀리고, 디아비 세우니 세스크가 수비 봐야 할 형편이고, 데닐손 세우니 얘는 어디가서 뭘 해야 할지 몰라서 헤메고. 그렇게 한시즌 날려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벵거는 플라미니 하나를 대체하기 위해 미드필더 둘을 세우는 해법을 내놓습니다. 수비는 쏭에게 맡기고, 공격은 디아비나 데닐손더러 분담하라고 하는 거죠. 야구 이야기지만 머니볼이 생각났습니다. MLB의 오클랜드가 제이슨 지암비를 포함해 3명의 탑스타를 내보냈지만, 오클랜드는 이들을 1:1로 대체하는 대신, 이들 셋의 능력을 종합해서 그만큼을 해줄 수 있는 3명을 보강해 이전보다 더 강한 팀을 꾸렸다는 이야기였죠. 비슷한 해법이었고 제법 성공적이었습니다. 쏭이 수비를 전담함으로써 미드필드를 더욱 강하고 공격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드필드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페르시 덕분에 원톱의 고립 문제도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전략에도 플랜B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의 장기 부상은 사실 불운입니다만(사실 페르시 부상은 상수이긴 합니다만) 그 이전에, 페르시의 공백에 대한 대책 따위는 없었습니다. 벤트너는 부상당하지 않았더라도, 전술적으로 페르시를 대체할 수 없는 자원이었습니다. 벵거가 원했던 것은 득점력도 득점력이지만, 스스로 미드필드와 양쪽 윙들의 연결고리가 되어서 팀 전체의 공격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었고 그래서 170cm가 채 안되는 아르샤빈이 원톱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벤트너가 부상에서 복귀한 뒤로도 몇경기 해보다가 도저히 안되니 벤트너 원톱으로 바꿨고, 벤트너가 득점을 해주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원톱이 고립되면서 팀 전체의 경기력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포워드진은 수비형 미들 자리에 비하면 넉넉한 형편이었습니다. 몸은 작지만 패싱이 되는 아르샤빈과, 패싱은 안되지만 몸빵이 되는 벤트너, 몸빵과 패싱이 안되지만 결정력을 갖춘 에두아르두가 페르시의 능력을 조금씩이라도 나눠갖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쏭의 수비형 미드필드 자리는???? 아예 수비형 미드필드를 볼 수 있는 선수가 아스날 스쿼드엔 전혀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유스에서 올린 - 그나마 풀백이 원래 포지션인 - 이스트몬드가 고작이었던 거죠. 거기에 쏭은 유사시에 센터백 백업으로도 활용해야 할 자원이었습니다. 쏭이 올시즌 꾸준히 출장해줬기에 그나마 시즌 막판까지 우승에 대한 꿈만이라도 꿀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쏭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은 팀 전체의 전술을 아주 경직시켰습니다. 데닐손 디아비 나스리 로시츠키 램지 모두 수비력에서 세스크보다 좋다고 말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미드필드에 수비 부담을 안고 있었고 그래서 3톱 중 한명은 꼬박꼬박 미드필더를 넣을 수 밖에 없었죠. 게다가 둘이 합쳐 한명 몫을 해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유사시 4-4-2로 투톱을 쓰기도 힘들었습니다. 덕분에 에두아르두가 완전히 죽어버렸죠.

세스크보다 수비 잘하고 쏭보다 공격 잘하는 중미 한명만 있었으면 되는 문제였습니다. 강팀 상대할 땐 세스크 옆에 세울 수도 있고, 쏭 빠지면 수미 백업 보면 되고, 급할 땐 4-4-2로 돌리면서 여유있게 스쿼드를 운용할 수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대책없이 이적 시장을 그냥 끝내버린 겁니다.

마지막으로 골키퍼. 천하의 벵안도 피해가는 포지션이 있을 순 있지요. 문제는 데려오기 전에 잘못볼 수는 있다지만, 왜 눈앞에서 보면서도 문제를 외면하냐는 겁니다. 알무니아가 주전이 되기 위해 필요했던 레만의 실수는 단 두개였습니다. 같은 기준을 알무니아와 파비앙스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겁니까? 어리니까? 성장중이니까? 얘네 오히려 갈수록 실수를 더 하고 있다구요. 얘네보다 나은 골리, 빅4 말고 다른 팀에도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번 시즌 갑자기 발생한 문제냐? 그건 아니잖아요. 센터백, 중미, 골리 모두 수년전부터 얻어터지고 있던 문제란 말입니다. (공격진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중미가 보강 되었다면 투톱으로도 운용 가능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패스합니다.) 그런데 그걸 다 생깐거죠. 천길 낭떠러지 위에 남들은 돌다리도 두들겨본다는데 우리는 줄로 엮은 흔들다리도 아닌, 얇은 합판 한장 걸쳐놓고 이게 무너지지 않기만 기다린 겁니다.

돈이 없어서 그랬다면 동정이라도 하지요. 올시즌 아스날은 이적예산 0으로 시작했어도 25M이 남았습니다. (하이버리 스퀘어 비분양 문제는 애초에 그쪽 자금 문제가 구단 운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설정이 되어있었어요) 적당한 선수가 없었다? 애초에 얇은 스쿼드에 아주 빡빡하게 들어맞는 전술을 짜놓았으니 그 전술에 맞는 선수 찾으려면 힘들죠. 그러니 전술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선수를 영입해야하는건데 이건 뭐 닭이 먼저인자 달걀이 먼저인지....

오늘 이스트몬드 보면서 내내 이스트몬드가 잘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혹시 압니까? 오늘 반짝하는거 믿고 내년에 쏭 백업은 이스트몬드만 믿고 갈지... 결국 후반들어 무너지긴 했습니다만, 경기 끝나자 등골이 오싹해지더군요. 오늘은 못했지만 내년은 잘할테니 역시 내년 쏭 백업은 이스트몬드... 이게 아닐지요. 이게 아스날의 현 주소인 겁니다.

샤막의 영입이 완료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영입 된다면 아마도 페르시의 백업이겠죠. 현재 포워드가 많은데도 페르시의 백업을 영입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내년에도 4-3-3을 유지한다는 걸 겝니다. 그렇다면 벵감독은 수미 백업과 센터백 백업을 영입할까요? 전 내년도 전력이 제자리일 것 같아 불안합니다. 갈라스, 켐벨이 남는다면 주루도 있으니 이대로 고고씽. 갈라스 나간다면 하나 데려와서 결국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될 것 같아요. 세스크보다 수비 잘하고 쏭보다 공격 잘하는 중미는 데닐손 성장할테니까 퉁쳐버리고, 경험많고 노련한 전문 수미는 따져보니 어차피 백업이라면 데닐손 성장할테니까 퉁쳐버리고. 결국은 4-3-3에서 효용이 떨어진 에두아르두만 방출하고 끝날 것 같아요.

제목이 다소 자극적이었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꼭 돈을 써야만 우승을 논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승을 노리는 팀이라면 꾸준히 전력을 보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매년 돌려막기로 요행을 노리는 팀은 우승을 논할 자격 따위는 없다고 봐요. 꾸준히 특급 유망주를 생산해내는 바르셀로나 조차도 매년 선수를 보강합니다.

by 고금아 | 2010/04/19 01:06 | 경기 리뷰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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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ViceRoy at 2010/04/19 02:26
공감합니다.
벵거의 아집이라면 아집인 것이라, 물론 그런 점도 좋아해야[?] 구너겠지만서도 좀 슬프네요.
Commented by 이동욱 at 2010/04/19 07:31
전 맨유팬이긴 하지만..

사실 플라미니 판게 제일 삽질이라고 봐요.
비에이라야 뭐 나이도 있고 하니 그려려니 하지만
아직 창창한애를 주급좀 올려주기 싫어서 팔아버린거나 마찬가지니 --;;
그걸 공포의 DDS로 때울라고 두시즌은 버린 셈이고...

ps.은별이 데려가주셔서 감사...첩자질도 잘하고 있나보던데...-.-;;
Commented by GrayFlower at 2010/04/19 10:17
정말 골리 문제는 심각한데 아스날 같은 빅클럽에서 왜 그런 수준의 키퍼를 계속 쓰는지 모르겠네요. 위건의 2번째 골 보고 파비안스키는 안되겠구나 했네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베, 갈 하시니 밀란의 둘이 생각나네요. 베를루스코니, 갈리아니(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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